대법원 판례 리뷰

[대법원 1997도2021] 국가보안법위반(간첩·잠입·탈출·회합·통신 등) 전원합의체 판결 해설

라이프서초 2025. 11.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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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캐나다 국적 교포가 제3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간 행위가 국가보안법상
‘지령탈출’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에 포함되며,
외국인이라도 반국가단체 지령을 받아 입북했다면 ‘탈출’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1. 사건 개요 – 캐나다 국적 교포, 두 얼굴의 활동

이 사건의 주인공은 캐나다 국적의 교포로, 겉보기에는 평범한 해외 동포였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캐나다 현지의 친북 성향 매체에서 잡무와 광고를 맡아 일하면서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에 연루될 정도로 복잡한 관계망 속에 있었다.

 

1988년, 그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 국방부 소속 정보요원과 접촉하게 된다. 당시 그는 캐나다 내 친북 인사의 동향을 알려주는 협조자로 활동하며, 가끔 정보를 제공하거나 우편으로 자료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협조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국가기관의 비공식 협조원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측과 직접 연결된 인물로 변해갔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그는 자신이 ‘북한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착각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1991년 이후부터 국내 재야단체의 구성, 지도부 성향, 정치적 흐름, 시민단체의 사업계획 같은 정보를 수집해 북한 측에 전달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지령과 여비를 수수하고, 음어(암호)로 작성된 메모와 연락체계를 통해 지속적인 통신과 회합을 이어갔다.
당시 그의 활동은 단순한 개인적 방문이나 교류 차원을 넘어서,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 움직인 정황이 명확히 드러났다.

 

가장 문제가 된 시점은 두 차례였다.
1995년 5월 13일, 그는 캐나다 토론토를 출발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북한 평양에 입북했고,
1996년 9월 14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국해 중국을 거쳐 다시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두 입북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그 수행을 협의하기 위한 ‘지령탈출’ 행위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국적과 이동 경로였다.
그는 캐나다 국적자였고, 출발지도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캐나다) 이었다.
따라서 1심과 항소심은 “외국인이 제3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것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이뤄진 행위이므로,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검찰은 “국가보안법은 내국인·외국인을 가리지 않으며,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에 포함되므로, 외국인이 북한으로 들어간 행위 역시 대한민국 법질서 안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간첩죄를 넘어서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 그리고  ‘탈출의 개념과 영토의 범위’ 라는 헌법적 문제로 발전하며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 판결은 이후 국가보안법 해석에서 ‘탈출’의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 그리고  ‘외국인의 행위에도 적용 가능한가’ 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2. 주요 쟁점 – 국가기밀의 경계와 탈출의 의미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집중적으로 논의한 쟁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국가보안법 제4조의 ‘국가기밀’이 어디까지를 뜻하는가,
둘째, 외국인이 제3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들어간 것이  ‘탈출’ 에 해당하는가,
셋째, 유죄와 무죄가 섞여 있는 경합범 사건의 판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였다.

 

먼저 국가기밀의 범위를 보자.
국가기밀은 단순히 군사정보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국가단체에 알려지면 대한민국의 이익이 해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포함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보가 기밀인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기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준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 비공지성.
신문, 방송, 잡지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은 더 이상 기밀이 아니다.
둘, 실질적 위험성.
그 정보가 북한에 전달되었을 때 국가안보에 실제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결과나 정치인의 성향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는 기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재야단체의 내부조직, 활동계획, 지도부 성향 같은 비공개 정보북한 입장에서는 가치 있는 첩보가 되므로, 이런 내용은 국가기밀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쟁점은 ‘탈출’의 의미였다.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탈출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탈출’은 단순한 국경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벗어나거나 반국가단체의 지배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뜻한다.
문제는 피고인이 외국인이라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출발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원심은 “탈출은 내국인에게만 적용된다”고 보았지만, 검찰은 “법 문언에 내외국인 구분이 없고, 북한은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이므로 외국인도 포함된다”고 반박했다.

 

마지막 쟁점은 경합범 판결 처리 원칙이었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일부 유죄, 일부 무죄가 동시에 존재할 때,
상급심이 무죄 부분만 파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전체 형량 구조를 고려해 유죄 부분까지 함께 다시 심리해야 하는지가 핵심이었다.

 

3. 대법원 판단 – 외국인도 ‘지령탈출’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세 가지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첫째, ‘국가기밀’의 개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제4조의 ‘기밀’이란 반국가단체에 알려지면 국가안보에 실질적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공개된 정치·사회 정보는 더 이상 탐지나 확인의 필요가 없는 공지의 사실로 보아 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재야단체의 구성, 활동계획, 사업방향 등은 비공개 정보로서 누설될 경우 반국가단체에 이익을 주고 국가에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이 명백하므로 기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둘째, 외국인의 제3국 경유 입북도 ‘탈출’로 인정했다.
‘탈출’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벗어나거나 반국가단체 지배지역으로 들어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며,
그 행위의 주체는 내국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문에 내국인으로 한정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기 위해 제3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다면 탈출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었다.
또한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북한은 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포함된다.
따라서 캐나다 → 중국 → 북한으로 이어진 이동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과 제3국에 걸친 행위로서 형법 제2조, 제4조의 국내범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법이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셋째, 경합범 관계에서는 일부 무죄가 파기되면 유죄 부분도 함께 파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의 무죄 부분(탈출)과 유죄 부분(회합·통신·금품수수 등)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출 부분만 파기되면 전체 형량의 균형이 깨질 수 있으므로 유죄 부분도 함께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일부 대법관들은 “‘탈출’이라는 단어의 일반적 의미는 ‘어떤 지역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므로, 제3국에 거주하던 외국인이 북한으로 들어간 것은 탈출이 아니다”라며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 확장해석이라고 반대의견을 냈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채택되면서 외국인도 지령탈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법리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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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은 국가보안법 해석사에서 
기밀의 경계를 현실적으로 정리했고, 탈출의 주체를 외국인까지 확장했으며, 경합범 파기 원칙을 명확히 제시했다.
즉,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국적이나 출발지가 다르더라도 동일한 책임이 따른다는 대원칙을 확인한 판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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