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리뷰

[대법원 2024다290604] 사해행위 – 빚을 피하려는 상속포기, 법은 어떻게 판단했나

라이프서초 2025. 12.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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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많은 사람이 상속을 포기하면, 그건 채권자를 피하려는 사해행위로 볼 수 있다.
가족 간 합의라도, 근거 없는 기여분은 인정되지 않는다.
상속은 가족의 일이지만 동시에 채권자의 권리와도 연결된 문제이다.

1. 사건의 배경 – 빚이 많은 아버지의 상속포기

이 사건은  “빚이 많은 사람이 상속받을 권리를 포기하면, 그게 법적으로 괜찮은가?” 에서 시작됐다.

어떤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이미 빚이 재산보다 훨씬 많았던 사람이었다.
즉, 가지고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훨씬 많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남긴 재산은

  • 부산의 주택 한 채,
  • 하동에 있는 논 한 필지,
  • 자동차 한 대였다.

법대로라면 남편과 자녀들이 이 재산을 법정상속분에 따라 나누어 가져야 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모여 상속재산을 나누는  ‘분할협의’ 를 하면서
이렇게 정했다.

  • 부산 주택과 자동차는  딸(피고) 이 모두 갖기로,
  • 하동의 논은  아들(다른 자녀) 이 갖기로,
  • 그리고 남편(즉, 빚이 많은 아버지)은 아무것도 안 받기로 했다.

즉, 이 아버지는  “나는 상속 안 받을게” 라고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버지에게 이미 채권자, 즉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전에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법원에서 갚으라는 확정판결까지 받은 상태였다.

이 채권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상속받을 수 있었던 재산을 일부러 포기해서,
내가 받을 돈을 피하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채권자가 소송을 냈다.

“그 상속포기는 사해행위다.
즉, 나 같은 채권자를 해치려는 행동이니 무효로 해달라.”

이게 바로  ‘사해행위취소소송’ 이다.

2. 법적인 쟁점 – 상속포기도 ‘사해행위’가 될 수 있을까?

사해행위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간단하다.
“빚이 있는 사람이 일부러 재산을 줄이거나 포기해서,
채권자가 돈을 못 받게 만드는 행동” 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빚이 많은데 자기 집을 자식 이름으로 돌려놓는다면,
그건 명백히 채권자에게 손해를 주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새로 생긴 재산을 ‘이전’한 게 아니라,
‘받을 수 있는 상속을 아예 포기’했다.
이게 과연 사해행위일까?

 

대법원은  “그렇다, 될 수 있다” 고 본다.

 

이유는 이렇다.
이미 빚이 많아서 재산보다 채무가 훨씬 큰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도 사실상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그걸 포기해버리면,
채권자가 돈을 받을 수 있는 공동담보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사람이 상속을 포기해서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줄었다면,
그건 사해행위로 본다.”

다만 모든 상속포기가 다 불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들끼리 상속을 나눠가질 때
“내가 조금 덜 가질게” 하는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자신의 상속분을 전부 포기하거나 현저히 적게 받은 경우라면
그건 사해행위가 될 수 있다.

 

3. 하급심의 판단 – “딸이 어머니를 많이 돌봤으니까 괜찮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아버지가 상속을 포기하긴 했지만,
딸이 어머니를 오랫동안 간호했으니까
그만큼 더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즉, 딸의 ‘기여분’을 인정한 것이다.
‘기여분’이란 쉽게 말해  “어머니 재산이 유지되거나 늘어나는데
딸이 특별히 기여한 부분” 을 의미한다.
민법에는 이런 제도가 있다.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재산 형성에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상속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급심은 “딸이 어머니를 간호했으니
그만큼 더 받은 것이고, 따라서 사해행위는 아니다”고 본 것이다.

4. 대법원의 판단 – “기여분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기여분은 막연한 주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고 명확히 말했다.

딸이 어머니를 돌본 건 사실일 수 있지만,

얼마나 오래 돌봤는지, 실제로 돈을 들였는지, 다른 가족은 간호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이런 구체적인 증거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다른 가족들도 모두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간호를 도왔다는 증언이 있었다.
즉, 딸 혼자 특별히 돋보이게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는 기여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기여분은 단순히 가족으로서 당연히 하는 돌봄이나 병간호로는 부족하고,
“다른 상속인과 비교해 특별히 차별화된 기여”가 있어야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딸이 기여분을 주장하려면
명확한 근거자료나 법원의 별도 결정이 필요했는데,
그런 게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밝힌 기준 – 어디까지가 사해행위인가

이번 판결은 “상속포기도 사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다시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정리했다.

  1. 채무초과 상태의 사람이 상속을 포기하면 원칙적으로 사해행위이다.
    왜냐하면 그가 상속을 받았더라면 그 재산이 채권자에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다만 상속분이 법정상속분과 큰 차이가 없을 경우에는 예외이다.
    즉, 분할 결과가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기여분이나 지정상속분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건 채무자가 입증해야 한다.
    “가족끼리 합의했어요”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적으로 유언이나 가정법원 심판 등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기여분이 인정되려면, 통상적인 돌봄을 넘어 ‘특별한 기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함께 살거나 병간호를 한 정도는 기여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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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아버지의 상속포기는 사해행위로 본다

결국 대법원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아버지는 이미 빚이 많았고,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을 모두 포기했다.
그 결과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줄었다.
그러므로 이 상속포기는 채권자를 해치는 사해행위다.”

그리고 원심판결을 파기(무효) 하고,
다시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즉, “다시 제대로 심리해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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