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리뷰

직원이 잘못하면 회사도 처벌? – 헌재가 위헌 결정한 양벌규정의 한계

라이프서초 2025. 7.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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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범죄에 법인도 처벌 가능한가요

–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본 ‘양벌규정’의 경계

헌재결정례_2008헌가18.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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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은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현대사회에서는 ‘법인’이 자연인 못지않은 주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사 하나가 움직이면 수많은 공사와 계약이 발생하고 이익도 손실도 법인을 통해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이런 법인이 고용한 직원이 법을 위반했다면 그 책임을 법인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법인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사건은 바로 그 질문에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답입니다.
바로 헌재 2008헌가18, 구 건설산업기본법 제98조 제2항 위헌결정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대전지방법원에서 한 건설회사가 기소됐습니다.
사건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 회사의 대전지사장이 무려 67건에 걸쳐 회사 명의의 건설업등록증을 다른 사람에게 대여했고
그 대여는 건설산업기본법상 명백한 위반행위였습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이 직원의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 조항에 따르면 회사 자체도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해당 회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직원이 잘못한 건데 왜 회사도 같이 처벌받아야 하느냐”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고 대전지방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게 됩니다.

 

쟁점이 된 조항은 무엇일까요

구 건설산업기본법 제98조 제2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법인의 대리인·사용인 기타 종업원이 그 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96조 제4호의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당해 법인에 대하여도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한다”

직원이 법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법을 위반하면
회사가 그 책임 유무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은 소위 양벌규정으로 불리는 조항인데요
우리 법 곳곳에 존재하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 위헌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형벌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형벌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쁜 결과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비난할 만한 잘못이 있어야 그제서야 정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죠.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은 부당하다

헌재는 “법인이 종업원을 통해 범죄행위가 있었더라도
그 법인이 선임감독상의 의무를 다했으며 잘못이 없다면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해당 조항은 법인에게 면책사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도 않고
그냥 종업원의 범죄만으로 법인을 같이 처벌하는 방식이라
형벌에 관한 헌법 원리와 책임주의 원칙에 명백히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법인도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인을 절대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헌재는 현대 사회에서 법인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 책임은 단순히 결과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인이 종업원의 행위를 묵인했거나
감독을 게을리했거나
법인 자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방조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형벌은 고의나 과실 등 책임 있는 사유가 있을 때에만 부과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책임 없는 자를 벌한다’는 불합리한 법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재판관 중 일부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대규모 공사와 인명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인을 강하게 처벌하는 방식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종업원의 잘못은 조직 전체의 허술한 관리체계 때문일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위반행위로 인한 이익은 회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수 의견은 형벌의 본질이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회사 자체의 잘못이 없는 경우까지 형벌을 부과하는 건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

이 사건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직원이 잘못하면 회사도 처벌받는다”는 관행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회사의 책임은 반드시 명확한 잘못이 있을 때만 인정되어야 하며
누군가의 범죄를 이유로 또 다른 주체에게 형벌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형벌의 기본원칙을 다시금 확인한 판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책임 없는 자를 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입니다.
이 사건은 기업 활동과 법의 책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처벌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기업을 비롯한 단체에 책임을 묻는 입법이 있을 때는
그 책임의 근거가 구체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며
단지 결과만으로 형벌이 부과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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